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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생애

마금봉 2013. 11. 30. 09:56

방랑시인 김삿갓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김삿갓초상화 ♡김삿갓에생애.♡ 본명은 병연, 호는 난고, 별칭은 김삿갓 또는 김립으로 불리운 김삿갓은 1807년부터 1863년까지 삼천리 강산 전국 방방곡곡을 방랑하며 유람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풍운아이다. 조선시대 시대적 상황인 봉건사회의 양반들을 꾸짖으며 사회를 비판하며 서민의 애환을 민중의 노래로 읊어 주옥 같은 시를 많이 남겼다. 김병연은 1807년 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부 김안근 모 함평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12년 김삿갓이 6살때 조부 익순이 홍경래의 난에 연루되어 형벌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조정으로부터 일가폐족을 당하였다. 홍경래가 반란을 일으켜 쳐들어 오자 선천부사였던 그의 조부 김익순은 무관임에도 불구하고 싸우지도 않고 곧 바로 항복하였다. 다음해 봄 난이 평정되자 김익순은 역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처형되었고 가족은 멸족을 당하였다. 세인들의 천대로 하인 김성수가 그를 업고 모친과 가족들은 함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으로 들어와 숨어 살았다. 이런 가문의 내력을 알지 못한채 공부에 정진하다가 영월도호부 과거 백일장에 나아가 장원급제를 하게된다. 이 과거시험의 주제가 ‘논정가산충절사탄' 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으로 가산의 정공이 죽음으로 충절을 지켰음을 찬양하고 적에게 항복한 김익순의 비겁한 죄를 하늘이 알고 있음을 공박하라는 내용이었다. 김삿갓은 장원급제하여 집으로 와 모친께 자랑을 하였으나, 모친에게서 집안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에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어둔으로 옮겨 은둔생활을 하였으며 이후 죄인으로 푸른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다하여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얘기를 들은 김병연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죽을 생각도 하며 울기도 하다가 그의 아내와 낳은 지 얼마 안된 아이와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그는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22세에 삿갓을 쓰고 죽장 짚고 방랑길에 나섰으며 김삿갓이라고 별명을 얻게 되었다. 역적의 자손이 그의 조부를 욕하는 시를 지어 상을 탔으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여 삿갓을 쓰게 되었고 이름도 김병연 대신 김삿갓이라 스스로 칭했다 . 술을 좋아하고 금강산을 특히 좋아했던 그는 서민속에 섞여 상류사회를 풍자하는 시를 짓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읊으며 한평생을 보냈다. 금강산을 시작으로 서울,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제주도 등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니다가 전라도 화순군 동북면 구암리 정시룡 댁에서 1863년 3월 29일 57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한많은 생을 마감했다. 이후 3년 뒤 아들 익균이 화순의 분묘를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현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 기슭으로 이장했다. 그 후 김병연의 묘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116년만에 발견되어 보존되어 오다가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강원도 영월에 가면 김삿갓유적지와 난고문학관이 있어 봉건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한 그의 풍자와 따뜻한 인간애를 음미할 수 있다. [출처] 김삿갓의 생애|작성자 화백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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