石汝明王旨
石汝明嘉善大夫檢校漢成尹集賢殿提學者
석녀명 가선대부검교한성윤집현전제학자
永樂十四年六月初二日
영악십사년유월초2일
석여명(石汝明)은 태종이 한성윤(漢城尹)
•집현정제학(集賢殿提學)에 임명하였으나,
조선의 녹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응하지 않았다.
이에 태종이 충주(忠州) 수의산(守義山) 회문동(回文洞)에 안치하니
, 이 후손이 충주(忠州) 석씨(石氏)를 칭하여 잉관(仍貫)하게 되었다.
석여명(石汝明)은 공민왕조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이르렀다.
충주(忠州)에 안치된 후 당시에 호은 정몽주,
목은 이색에 비해서 부끄럽지 않다는 평을 들었다 한다
. 죽은 후 태종이 좌찬성(左贊成)을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