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게 그런 줄만 알았던 옛 시절
보리고개 아버지는 춘삼월 해동이 되자마자
봄보리 씨앗을 천수답 다랭이에 파종을 한다
논두렁음지에는 아직도 서릿발이 꽃을 피우며
조롱하듯 하는데
언제부턴가
머리 부분에 뜯겨나간 밀짚모자
눌러쓰고 볕 에그 올린 얼굴 팔다리엔
여기저기 상처진 흉터로 가난에 찌든
빈티 농부 아버지셨지만
겨우내 놀던 소를 끌고 지게에 얹혀있던 밭갈이 쟁기
아버지에 소모는 이랴~ 소리는 여기저기 시샘하는 풋풋한
봄바람과 화음을 이룬다 하늘에 걸친 흰 구름이 도망칠 정도로
찌렁찌렁하셨다
지금이야 트랙터 로터리작업으로 쇄토작업이 더없이 편하지만
논뱀이에 밭갈이 쟁기 지나간 자리엔
오로지 사람 힘으로 부수는 정지작업은
온 식구가 매달려 고무라 쇠스랑 괭이 등으로
몸이 부서져라 골을 만들고
퇴비 넣고 비료 뿌려 씨앗을 파종한다
어디선가 산등성이 넘어 뻐꾸기 산꿩에 울음소리가 한적한 들판을
가득 메우고 까끔씩 불어오는 아직은 찬 기운 속에
감성에 봄 아씨가 강 건너 아지랑이를 유혹하며
이름 모를 들꽃들과 웃음 지며 향기로 답한다.
봄보리는 겉보리와 달리 밀과 같은 형상으로 정미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은 고운 등겨로 보드랍다
거기에 사카린을 넣어 반죽을 해 가마솥에 쪄낸 것이 봄보리 개떡이다
새까맣게 변해 버린 소똥 닮은 그 떡 요즘에 케이크처럼 맛있게 먹으며
주린 배 채워주는 엄마에 에 대한 사랑이고 행복함을 느꼈다
보리는 파종하기 무섭게 싹이 트고 짙푸른 5월 말이면 봄바람에 은빛 수염으로
가득히 들판을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언제나 그랬듯이 춘궁기에 배고픔이란 여삼추 같은 기다림에 지루함
푸릇한 보리 잘라다 절구에 찧어 가마솥에 두른 멀 더 국
들이마시며 배고픔을 달래던 그 시절
그래도 그땐 삶이 그런가 보다 했지
친구들과 보리 청태 모여 앉아
추억거리가 덧없이 짙어만 같다
가난에 찌들었지만 힘든 만큼 에
그리움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도 넘실대는 은빛 수염에 보리밭을 보노라면
그때가 그립 고 고 향 밭떼기 저편에 잠드신 부모님
민들레 홀씨처럼 황무지로 날아간 친구들이
가슴에 서 새 까만 눈동자로 반짝인다
청춘과 이별한 반백에 서리꽃은
세월이 짓밟고 간 땟국이 뚝뚝 얼룩진 일기장으로 남아
낡으롬한 먼지처럼
쌓여가지만 그 먼지 파헤쳐 훅 불어 보면
반짝반짝 그리움이 풋풋한 고개를 내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