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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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판공파17세손 석지형(石之珩)오위귀감 해석 1610년(광해군2)~?조선후기문신 자는. 숙진( 叔珍)호.수현 (壽峴) 아버지는 경하(擎廈)이다. 1633년(인조11) 진사가되고 이듬해별시문과에급제 뒤에형조좌랑이되었다. 횡성현감으로재직중 김해에유배되었다곧풀려 오랬동안 (강화부교수)江華府敎授를지냈다 1653년(효종4)시사(詩事)를 소론 (疏論)하고 주역(周易)에내용을확대해석한(오위귀감)을 왕에게바쳐 역경(易經)심경(心經)과호피( 虎皮) 를하사받았다 현종 때 개성부교수( 開城府敎授)를지냈다. 【석지형(石之珩) 『오위귀감(五位龜鑑)』】 臣謹按, 節之九五曰, 甘節吉, 所謂甘節者, 不苦於節, 如嗜甘味, 无艱辛喫力底意思也. 五爲節之主, 而居坤之中土, 味作甘故取甘象. 蓋節之爲卦, 水滿澤上而節止之義也. 凡物旣滿而節之, 則合人情而无所苦. 方今公私困甚, 有如旣涸之澤, 而擧世所務, 專在裁損, 故民困滋烈, 國用猶匱, 是則可謂苦節, 不可謂甘節也. 昔鄒穆公時, 以二石粟易一石粃爲鳧鴈食, 吏以爲費, 請以粟食之. 公曰爾知小計, 不知大會. 周諺曰, 囊漏貯中. 粟之在倉與在民, 於我何擇. 惟此一言, 豈有司徒恤經費者, 所能及哉. 然則今之惟事裁損, 恐無遺秉滯穗之意, 而所益未補所損也. 不特此也, 天理之節文, 人臣之名節, 朝廷之節制, 无非節卦之用, 而莫有合於甘節之道者, 此非細故也. 伏願殿下, 毋偏於節損, 而厚其源本焉. 신이 삼가 살펴보았습니다:절괘 구오에서 “ 달콤하게 절제하니, 길하다”고 했으니, 이른바 ‘달콤하게 절제한다 ’는 절제하는데 괴롭지 않은 것이 달콤한 맛을 즐기는 것과 같아서 힘들고 고생하는 뜻이 없습니다. 오효는 절괘의 주인이 되는데 곤괘의 가운데 흙[中土]에 있고 , 맛이 달콤하기 때문에 ‘달콤한[甘]’ 상을 취했습니다 . 대체로 절괘의 괘가 됨이 물이 못 위에 차서 절제하여 그치는 뜻입니다 . 무릇 물건이 넉넉하지만(찼지만) 절제되면 인정(人情)에 부합하여 괴로워하는 바가 없습니다. 이제 공사(公私)에 곤란함의 심함이 이미 말라버린 못과 같아서 온 세상이 힘써야 할 바가 오로지 마름질하고 덜어내는 데 있는 것과 같으므로 백성의 곤궁함은 더욱 맹렬하고 나라의 쓰임조차 다하니, 이것은 ‘괴롭게 절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달콤하게 절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옛날 추나라 목공의 때에 두 석의 벼로 한 석의 쭉정이를 바꾸어 오리와 기러기가 먹게 하였는데 , 관리[吏]가 낭비로 여겨 벼로 먹이기를 청하였습니다 . 목공이 “너는 작은 계책만 알고 큰 계책[會]을 모르는 것이다. 주나라 속담에 ‘주머니가 새는데 안에 넣는다’고 했다. 벼가 창고에 있는 것과 백성에게 있는 것이 내게 무엇이 다를 것이 있겠는가?” 라고 하였습니다. 이 한마디 말은 어찌 유사(有司)로서 한갓 경비를 아끼려는 자가 미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일에서 마름질하여 덜어내는 것은 아마도 추수가 끝난 들판에 떨어진 이삭이 많다[遺秉滯穗]는 뜻은 없어서 이익이 되는 것이 손해가 되는 것을 돕지는 못할 듯합니다. 다만 이것만이 아니어서 천리의 절문(節文)과 신하의 명절(名節)과 조정의 절제(節制)가 절괘의 쓰임 아닌 것이 없는데, ‘달콤하게 절제하는 도에 합함이 있지 않는 것은 이는 세세한 일이 아닙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절제하고 더는 데에만 치우치지 마시고 그 본원을 두텁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