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홍주석씨 파(派) 소개 문중의 역사 석 씨(石氏)가 충주(忠州)와 홍주(洪州)로 분관(分貫)하게 된 것은 7세 석천을(石天乙)의 아들에 이르러서이다. 조선 개국 후 이성계(李成桂)는 그를 길러준 이모부 석양선(石良善)과 이모를 홍양부원군(洪陽府院君)과 경창 옹주(慶昌翁主)로 봉하였다. 그 후 석천을(石天乙)―석수명(石壽明)의 자손대 이후로 홍주(洪州)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그런데 조선이 개국하자 석여명(石汝明)은 벼슬하기를 거부하였다. 이에 태종이 석여명(石汝明)을 충주(忠州)의 수의 산회 문동(守義山回文洞)에 안치시켰는데, 이후로 석 씨(石氏)가 홍주(洪州)와 충주(忠州)로 분관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조 동원(同祖同源)이므로 경인보(庚寅譜) 수보(修譜) 때에 두 석 씨(石氏)가 '대동보(大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