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어른들이 출산 준비로 분주하던 모습에서
남자들이 하는 일이 있었다.
금줄 꼬기로, 반드시 깨끗한 볏짚으로
새끼를 꼬아두어야 했다.
아울러 숯. 청솔가지. 붉은 고추를 마련했다.
다른 것은 여성들이 알아서 해주더라도
새끼줄 준비만큼은 전적으로 남자들 몫이다.
신생아가 태어났을 때 문간에 두르는
새끼줄을 금줄. 혹은 인줄. 검줄이라고 부른다.
빈부격차. 신분고하. 지방차이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출생과 더불어 금줄과 인연을 맺는다.
"아들이오. 딸이오." 하고 따져 물을 것도 없다.
대문에 내걸린 새끼줄이 말해준다.
빨간 고추가 걸리면 아들.
솔가지만 걸리면 딸이었으니
금줄은 그야말로 탄생의 상징과 기호였다.
금줄의 역할은 무엇보다 잡인 출입 금하기다.
아기가 보고 싶은 친인척일지라도
삼칠일(21일) 안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산모는 삼칠일 동안 미역국을 먹으면서
조신하게 몸조리를 하였고,
삼칠일이 지나야 비로소 해방되었다.
금줄은 "닫힘과 열림" 의 경계선이었고,
산모와 아기는 닫힌 성역 속에서
그 안전을 보장받았던 샘이다.
금줄은 유교문화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우리문화이다.
금줄이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기에
그처럼 오래도록 한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살아왔을까,
금줄에 대한 시각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글자그대로 "금(禁)" 은 금지(禁止)의
뜻을 지닌다는 시각이다.
갓난아기 집에 늘어뜨린 금줄은 외인의 출입을
금하는 데 목적을 둔다.
당산제나 마을굿을 위해
동네 입구나 제관의 집, 당집에 쳐두었던
금줄도 신성구역과 일상구역을 구분하고
잡신의 침입을 막는 데 그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들 금줄은 일정시간이 지나면 바로 걷어낸다.
두번째 시각은 금줄을 "금(禁)" 이 아니라 "
검으로 보는 견해다.
역사민속학의 개조이신 구포출신 손진태선생 도 "
검줄문화" 라고 했다.
이 경우 대표적인 예가 장승, 탑, 당수나무
등에 감아둔 금줄이다.
이 금줄은 썩어 없어질 때까지 그대로 두는데,
감아둔 대상에 신성성을 부여하는 것이라 하겠다.
두번째 시각을 받아들인다면, 금줄문화는
한민족의 형성 당시부터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유교문화나 불교문화 어디를
돌아보아도 우리식의 금줄은 없다.
금줄은 유교문화나 불교문화와는 전혀 상관없이
"홀로서기"로 이어져 왔다.
금줄은 우리 잠재의식의 밑뿌리에
자리잡고 있는 독특한 의례문화다.
새끼를 꼬고 줄을 걸쳐놓는
행위 하나하나조차 엄숙한 의례다
보잘것 없는 한낱 새끼줄,
한토막의 새끼줄에 의례의
엄숙함을 싣고 있다.
금줄은 단순한 새끼줄이 범상한 줄로
바뀌는 의식적 비약이다.
이 비약의 비밀은 왼새끼에 있다.
정상적인 새끼가 오른쪽이라면,
금줄은 모두 왼새끼다.
왜 하필 왼새끼여야만 할까.
인간의 공간에는 정상적인 오른쪽 새끼가 필요하다.
그러나 "신들의 공간" 에는
비정상적인 왼쪽 새끼가 필요하다.
왼쪽과 오른쪽, 정상은 늘 오른쪽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오른쪽으로만 새끼를 꼬다가,
제의공간을 상징하는 금줄로
가면 왼쪽의 세계를 펼친다.
잡신이 그곳을 범하려다가
일상적이지 않은 왼새끼의 "
도발적 시위" 에 놀라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제의공간은 그 왼새끼 속에
들어 있는 의미이다.
새끼줄만 금줄로 쓰였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짚이 귀한 섬에서는 칡덩쿨로 금줄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이것조차도 왼새끼로 엮었다.
그렇다면, 새끼줄문화는
도작(禱作)문화의 소산임에 틀림없다.
쌀농사가 시작되면서 볏짚이 생겨났고,
볏짚에서 새끼줄이 생겼을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손진태선생의 주장은 이렇다.
대체로 중부와 남부에는 "가로 치는 검줄" 이
일반적이고, 평안도,황해도, 함경도에는
"드리우는 검줄" 이 보통이다.
그리고 경성 이남에서는 일시적 "검줄" 을 쓰나,
개성 이북과 함경도에서는 상시적인
"검줄" 을 사용한다.
경기지방을 경계로 이남과 이북의 차별성이
두드러진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금줄은 좌에서 우로
늘어놓는 금줄인데 반하여,
이북지방에서는 기둥에 늘어놓는 금줄임을 일제시대
현장조사를 통하여 보고하고 있다.
이북의 금줄은 아예 송침(松針)이라고
하여 솔가지를 끼워둔다.
금줄의 사용영역은 의외로 넓다.
금줄은 마을공동체문화
전체에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
마을의 당산, 서낭, 당수나무, 탑, 장승, 솟대, 대동샘 등,
신성시하는 모든 영역에는
반드시 금줄을 늘어뜨린다.
금줄치기는 장 담그는 장독대.
부엌 등의 집안 신앙처 곳곳으로도 퍼저나간다.
장독둘레에 금줄을 두르고 고추나 한지,
숯을 끼운다.
때로는 한지로 오린 버선본을 거꾸로 붙인다.
왼새끼와 거꾸로 선 버선본같이 비정상적인
"괴력" 앞에서 귀신이 범접할 수 있겠는가,
장독은 단순한 옹기가 아니라 장맛을
내게 해주는 철륭신의 "신전" 이니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이름 있는 날" 절기를 따져 가정에서
성주. 칠성 따위의 집안 고사를 올릴때도
금줄은 빠지지 않았다.
금줄은 기우제에도 등장한다.
금줄에 병을 매달고 병마구리에
버들가지를 꽃아둔다.
불타는 모진 가뭄 때이니
물을 염원하기 위해서 기우제를 진행하게 된다.
정월대보름날에도 달집을 지어놓고 금줄을 두르고
신성시 하며 잡물건의 투입을 막고
소원소지를 달아 송액영복을 기원한다.
금줄은 줄 자체로서만이 아니라, 줄에 매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의미를 구별할 수 있다.
금줄에 달아매는 것으로 고추, 솔가지, 숯 이외에
또 무엇이 있으며, 각각의 기능은 무엇일까.
고추는 남아를 상징할 뿐더러, 고추의 붉은색은 늘
악귀를 쫓아내는 벽사를 의미한다.
임진왜란 이후에 고추가 들어왔으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풍습임이 분명하다.
숯은 일종의 "정수기 필터" 처럼
정화작용을 하는 상징물이다.
솔가지가 살아 있는 늘 푸른 생동감, 생명의
상징임은 말할 것도 없다.
금줄에는 한지를 매다는 경우도 많다.
이는 밤에도 한지가 희게 드러나므로
구별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이유이고,
한지가 전통적으로 길지(吉紙)라 부르는 데서
유래한 기복적 성격도 담겨 있다고
우리민족연구소 주강현 박사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