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구미/산사랑 춥고 배고픈 옛날 겨울은 별로 일거리 찾기 힘든 농한기다 아버지는 가을에 추수한 깨끗하고 충실히 결실했던 볏짚 한단을 들고 와 새끼를 꼬고 새끼를 기둥으로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이틀 동안에 둥구미를 만드셨다 유난히 길고 긴 동지섣달 밤 먼 데서 개 짖는 소리 뒤에는 누군가에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을 밟고 지나간다 한참 뒤에 고요함에 흰 눈이 그자리에 둥지를 튼다 바깥마당 앞 미루나무 꼭대기 까치둥지는 이미 하얀 눈으로 덮혀 있다 가끔씩 불어오는 눈바람이 부엌 거적문을 가지고 춤을 춘다 그렇게 밤새 하얗게 쌓여만 가는데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하는 엄마 이불속에 초롱초롱한 참새새끼 눈을 보며 어서 자거라 한다 초저녁인데도 배속은 궁금하고 엄마 얼굴만 바라보지 눈치 빠른 엄마 하던일 놓으며 슬며 시 일어 나 밖으로 나가신다 춥고 배고팠던 긴긴 겨울 주전 부리래야 뭣이 있을까 부엌뒷곁에묻어둔 무 구덩이에 무를 둥구미에 담아오셨다 무 하나를 깎아서 내게 건넨다 시원하고 맛이 좋지만 걸트림하니 무 냄새가 입안에서 코끝으로 진동을 한다 무 구덩이는 언제나 그랬듯 겨울 주전 부리고 가끔씩 무생채가 겨울 신김치에 질린 대용이기도 했다 뒷방에 놓여있는 둥구미는 우리 집에 다용도 그릇이다 어느 때는 콩 쌀. 팥. 고구마. 오곡백과가 들락거리는 곳이다 아버지에 혼을 담아 탄생한 그릇 요즘에 플라스틱과 비교가 안 되는 아버지와 엄마손이 배어있는 보물단지 지금은 조용한 헛간 구석에서 가끔씩 쥐오줌과 똥이 얼룩진 모습이다 헛간을 들락일 적마다 상념에 젖기라도 나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남긴다 그 옛적 들락이던 곱고 예쁘던 잡곡단지 오늘도 어둑침침 한 냉방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그리움에 심장을 보듬으며 한마디 그래도 그때가 좋았는데
애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