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은 공책/산사랑 내 어릴 적 우리 집은 초가삼간에 안방으로 들어가는 곳은 흙으로 만든 봉당이다 봄이면 언제나그랬듯이 큰누이는 앞산에 하얀 분가루 흙을 파다 겨우내 청소라지로 잔뜩 그을린 벽이나 천정을 맺질을 한다 지금에 페인트 작업 과정이다 부엌뒤을 부엌 궁둥이 굴뚝이 세워진 곳은 굴뚝 머리 초가삼간에 부르는 전형적인 우리 집에 명칭인 듯 옛 시절에 우리 집 형편을 말해준다 내 위에 누나들이 셋이고 밑으로 여동생 하나 그리고 남동생이 넷 우리 9남매에 삼간 방에서 살아야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바람 잘 날 없는 시절이다 큰누나가 초등학교 졸업하자 내가 1학년 입학한다 공책은 1학년 입학식 때 한번 사주고 그 후로는 팔 절지 백로지 석장을 사서 한 장으로 국어. 산수 자연. 종합장을 만든다 그위에 누나들 도 1장으로그렇게 만들어 똑같이 나누어 쓴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지 않아 쓸 곳이 없다 그렇다고 구차한 살림에 넉넉하게 사줄 형편도 아닌 모양이다 공책은 고사하고 그것만이라도 풍족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학교같다오면 침으로 쓰인 공책을 지워야 내일 또 공부할 때 써야 하니 궁여지책이다 지우개도 없으니 팬티에 뻣뻣한 고무줄 조금 잘라 지우개로 써 본다 이리 찢기고 엉망이 된 공책 학교 가면 필기할 여분이 없어 선생님 볼 때만 쓰는 척한다 이거라도 넉넉하면 얼마나 좋았으랴 초등학교 6년 동안 유일하게 나하나만 백로지로 공책을 만들어 썼다 다른 애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가을 이면 운동회를 한다 달리기 시합 1.2.3등 에게 공책을 상으로 주었다 모처럼 기분 좋게 공책을 가지고 학교를 갔다 헌데 아이들이 나를 유심 히바라 본다 한 아이가 너 이공 책 어디서 났니 남에 것 훔쳤지 정말 기분이 안 좋았다 왜 내가 도둑취급을 받아야만 하나 그 뒤부터 나는 공책이 있어도 학교에 가져가지 않았다 그리고 운동회 때가 되어도 일부러 달리기 시합에서도 등수에 들려하지도 않았다 도둑놈 소리 듣기 싫었다 내겐 그 공책이 내손에 들어와도 애물단지처럼 싫었다 그냥 맘 편하게 백로지에 실로 엮어서 쓰는 것이 편하고 좋았다 결국은 한 권에 공책이 내겐 도둑취급받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가난이 원수라더니 두 눈에 떨어지는 눈물은 지금도 추억이란공책에 물들여진 눈물자욱 지워지지 않고 있다